책/읽고나서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1,2

써당 2012. 8. 19. 22:14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1

저자
토마스 만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1-11-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1835년 강건하고 낙천적인 요한 부덴브로크(1세)는 두번째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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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2

저자
토마스 만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1-11-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1835년 강건하고 낙천적인 요한 부덴브로크(1세)는 두번째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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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가 젤 불쌍했다...ㅠㅠ 그리고 토마스의 동생 토니가 제일 귀여웠다. 

1권말에서 토니랑 토마스가 말싸움하는 부분이 진짜 대박. 


여튼 토마스 만은 갑이자 진리.


=

1


"(전략)네가 태연자약하게 약간 야유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페르마네더한테 되돌아가면 우리의 체통을 지킬 수 있는 거야. 그 반대로 네가 그러지 않으면 우리의 체통을 구기게 되는 거야. 그렇게 되면 너는 별 대수롭지 않은 그 일을 가지고 정말 추문을 일으키는 거야."

그녀는 턱을 홱 치켜들고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제 그만해, 토머스! 이젠 내 차례야! 내 말 좀 들어봐! 뭐가 어째? 시끌벅적하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 않으면 치욕이나 추문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천만에! 남몰래 사람을 갉아먹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비밀스런 추문이 훨씬 더 나쁘단 말이야! 이곳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이 남들한테 <극상>으로 보이고 싶은 우리 부덴브로크 가 사람들이니까 남들이 안 보는 집안에서는 굴욕을 꾹 참고 지내자는 거야? 톰, 난 오빠한테 실망을 금할 수 없어! 아버지가 살아 계셨더라면 어떻게 할 건지 한번 생각해 봐! 그러고 나서 아버지의 생각대로 판단을 내리란 말이야! 아니야! 깨끗함과 공개성을 판단의 토대로 삼아야 해. 오빠는 사업 장부들을 언제라도 세상에 내보이며 이렇게 말할 수 있잖아. 여기 있습니다. 이것 말고 다른 것은 우리한테 없습니다. 난 하느님이 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고 있어. 난 하나도 두렵지 않아! 율헨 묄렌도르프가 내 옆을 지나가면서 나한테 인사하지 않아도 좋아! 그리고 피피 부덴브로크가 목요일에 여기 와서 고소해하며 <어쩜 벌써 두번째 아니야. 물론 두번 다 남자 책임이긴 하지만 말이야!> 하면서 호들갑을 떨어도 좋아. 난 그 점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초연해, 토마스! 난 옳다고 생각한 일을 했다는 걸 알고 있어. 그러나 내가 율헨 묄렌도르프나 피피 부덴브로크가 두려워서 모욕을 감수하고 막돼먹은 술 취한 사투리를 듣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들이 두려워 어떤 남자한테서 그런 말을 들어가며, 천국의 사닥다리에서 그런 장면을 보며 그 도시에서 견딘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야. 나의 출신이며 교양이며 내 가슴속에 있는 모든 것을 부인하면서까지 거짓으로 내가 행복하며 만족한다고 꾸미는 것이야말로 무가치한 것이야. 난 바로 그런 것을 추문이라고 부르고 싶어!"

그녀는 말을 중단하고 턱을 손에 얹고는 흥분해서 유리창 쪽을 응시했다. 그는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한쪽 다리에 의지한 채 그녀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시선은 그녀 쪽을 향했지만 그녀를 보지는 않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2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우리를 화나게 하고 다만 기분을 상하게 할 뿐이지만 의기소침한 상태에서는 만사가 우리를 피곤하고 무거우며 말없는 분노로 짓누르는 경우가 있다. 토마스는 어린 하노의 행동에 대해 너무도 상심했다. 그는 이러한 잔치가 그에게 불러일으키는 느낌에 대해 매우 상심했다. 그리고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어쩔 수 없다는 느낌에 대해 더욱더 상심했다. 몇 번이고 마음을 가다듬고 즐거운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했으며 스스로에게 오늘이 기쁜 날이라는 암시를 주려고 애썼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의기양양하고 즐거운 기분에 충만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사실 악대에서 나는 소음,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 및 그를 축하하기 위해서 여기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그의 신경에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과거와 그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아울러 종종 그의 마음속에서 일종의 약한 감동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모든 일이 우스꽝스러우며 고통스럽다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음이 제멋대로인 이 저열한 음악이며 주식 시세와 음식에 대해 잡담하는 이 진부한 모임이... 이러한 감동과 역겨움이 뒤섞인 감정이 바로 그를 절망적으로 피곤한 상태에 빠뜨렸다.


-


울적한 기분에 빠질 때면 토마스 부덴브로크는 종종 자신의 존재에 대해 자문하곤 했다. 혹은 단순하고 우직하며 소시민적인 동시대의 다른 시민들보다 자신을 더 높이 평가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자문해 보았다. 젊은 날 꿈에 부풀었던 활동력이며 활기찬 이상주의는 이제 온데간데없어졌다. 연기하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연기하는 것, 반쯤은 진지하게 반쯤은 장난스럽게 설정한 야심을 품고 사람들이 겨우 비유적인 가치만 인정할 뿐인 목표들을 추구하는 것. 그러한 명랑하고 회의적인 타협심과 재기발랄한 모호함을 지니기 위해서는 많은 신선함과 유머 그리고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토마스 부덴브로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피곤하고 지겨운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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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물결..." 토마스 부덴브로크가 말했다. "줄줄이 잇따라 왔다가는 부서지고, 왔다가는 부서지고, 황량하게 끝도 목적도 없이 헤매면서. 하지만 그것은 단순하고 필연적인 것처럼 마음을 진정시켜 주고 위로해 준다. 난 점점 더 많이 바다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어. 예전에 내가 산을 더 좋아한 이유는 아마 그게 더 멀리 있어서 그랬을 거야. 이제 다시는 그리고 돌아가고 싶지 않아. 두렵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그곳은 너무 자의적이고, 너무 불규칙적이고, 너무 다양해. 확실히 그 앞에 그만 쓰러지고 싶은 심정이야. 바다의 단조로움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인간일까? 내면적인 문제에 너무 오래, 너무 깊이 얽혀 들어간 사람들일 거야. 그들이 외면적인 문제에 대해 요구하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 다음의 한가지 사실 때문이야. 그건 단순성이지. 사람들은 해변의 백사장에서는 조용히 쉬게 되지만 산에서는 용감하게 등반할 수밖에 없지. 이러한 차이가 있지만 그것은 피상적인 면에 불과해. 진정한 차이는 사람들이 양자에 바치는 시선에 달려 있지. 모험심, 결의 그리고 용기로 충만된 자신 있고 힘차며 행복한 눈은 봉우리와 봉우리를 휘젓고 다니지. 하지만 어찌할 바를 알 수 없는 이런 신비한 숙명론으로 파도가 밀어닥치는 망망대해에서 으스름하고 절망적이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눈은 꿈을 꾸는 거지. 그 눈은 언제 어디에선가 우울한 혼란 속을 깊이 들여다본 적이 있었어. 건강과 병이란 그런 차이야. 사람들은 자기의 생명력을 시험하려고 들쭉날쭉하게 솟아 있고 틈이 벌어진 현상들의 불가사의한 다양성 속으로 대담하게 기어 올라 들어가지. 그렇지만 여지껏 그 생명력이 소모된 적은 없었어. 그리고 사람들은 내면의 혼란으로 인해 피곤함을 느끼지만 외부적으로 바다라는 단순한 광활함에서 평화를 느끼는 거야."

페르마네더 부인은 마음이 위축되고 편치 않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임에서 갑자기 어떤 좋고 진지한 이야기가 나올 때 단순한 성격을 지닌 사람들이 그러듯이 말이다. 그런 말은 좀 안 했으면 좋겠는데!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와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려고 그녀는 아주 먼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아무 말이 없는 가운데 오빠한테 부끄러워한 것에 용서를 구하는 심정으로 그의 팔을 자기의 팔 속으로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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