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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의 동쪽 2

써당 2012. 6. 11. 00:44



에덴의 동쪽. 2

저자
존 스타인벡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8-06-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존 스타인벡의 가족사를 담은 기념비적 대...
가격비교



칼 너무 불쌍하다... ㅠㅠ 

그리고 스타인벡 사람 너무...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 자비 없는 작가인듯... ㅠㅠ 

특히 톰 자살할 때 개충격... 으으 죽이지 마ㅠㅠ 찰스 죽었을 때도 너무 슬펐다... 애덤 나쁜 새끼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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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은 톰이 '논쟁의 대가'라고 애덤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톰을 지켜보노라면 그는 아들에게서 충동과 두려움, 적극성과 소극성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자신이 지니고 있는 기질이었다.

톰은 아버지의 감성적인 부드러움이나 쾌활하고 잘생긴 외모를 물려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톰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의 면모를 느낄 수가 있다. 그의 내면에는 강인함과 따뜻함, 그리고 한결같은 성실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성격의 밑바닥에는 소심한 면이 있었다. 그는 아버지처럼 쾌활해 보이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마치 바이올린 줄이 끊어진 것처럼 갑자기 수심에 잠기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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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고, 나름대로 지론을 세우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죽음이 존재한다고 믿지는 않았다. 죽음은 자신과는 동떨어진 건 줄 알았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도 불멸의 존재였다. 그런데 죽음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그것은 무모한 침입자였고, 그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던 불멸성을 부인했다. 그렇게 해서 그가 쌓아 놓은 벽에 금이 갔고, 이윽고 벽 전체가 무너지고 말았다. 내 생각에 그는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죽음은 개인적인 적이었고, 그가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것이었다.

라이자에게 그것은 단지 죽음일 뿐이었다. 약속되고 예정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주저앉지 않고 자신의 일에 충실할 수 있었다. 마음은 심란했지만 오븐에 콩을 넣고, 파이를 여섯개나 굽고, 조문객들에게 음식 대접을 하기 위해 얼마큼의 음식이 필요한가를 정확히 계산했다. 또한 슬픔 속에서도 새뮤얼이 깨끗한 흰 셔츠를 입었는지, 검은 옷에 솔질을 해 먼지를 털었는지, 그리고 구두를 까맣게 칠했는지 챙겨 주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훌륭한 결혼 생활을 이뤄 가기 위해서는 이처럼 성격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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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표준성서에는 인간에게 죄를 저지르고 싶은 충동을 극복하라고 '명령'을 내려요. 여기서 죄는 무지로 볼 수 있죠. 그런데 흠정역 성서에는 '너는 죄를 다스릴 것이다.'라고 약속을 하는 것으로 번역이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인간이 확실하게 죄를 극복할 것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나 '팀셸(timshel)'이라는 히브리어는 '너는 할 수도 있을 것이다'로, 선택의 기회를 주는 단어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인지도 모릅니다. 선택의 길이 열려 있다는 말이니까요. 요컨대 책임을 인간에게 돌리고 있는 겁니다. '너는 할 수도 있을 것이다(너는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는 곧 '너는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너는 다스리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는 의미이지요. 잘 모르시겠어요?"

"알겠네, 잘 알겠어. 그런데 자네는 이것이 신의 법이라고 믿지 않는군. 그런데 어째서 자네는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아! 오래전부터 이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미 이런 질문을 하실 줄 알고 단단히 준비를 해 두었어요. 무수한 사람들의 사고와 생활에 영향을 끼쳐 온 글이면 어느 것이든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과서나 교회에서 '너는 다스려라'라는 말에서 명령조를 느끼고, 그 말에 복종하는 사람이 수백만 명이나 됩니다. 그리고 '너는 다스릴 것이다'라는 글 속에서 신의 예정설을 느끼는 사람들이 또 수백만 명 있습니다.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한다고 해도 미래를 좌지우지할 순 없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너는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하는 말은 다릅니다! 이 말은 인간을 위대하게 만들고, 인간을 신들과 동등한 자리에 올려놓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약한 행동이나 추잡한 행위 혹은 형제를 살상하는 잔인한 일에 있어서 중대한 선택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죠. 인간은 자신의 길을 선택해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그 길을 걸어가 목표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중략)

"지금 전 신학에 대해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전 신을 믿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전 그 빛나는 도구, 즉 인간의 정신에 대해 새롭게 애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인간의 정신이야말로 이 광활한 우주에서 사랑스럽고 독특한 것이지요. 그것은 항상 공격을 받지만 결코 파괴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너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에서처럼 인간에게는 선택권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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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5일 정오, 톰은 대장간 바깥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화창한 아침이 물러가고, 비를 머금은 회색 구름이 대양에서 밀려와 산을 넘어 밝은 대지를 그림자로 뒤덮었다.

말발굽 소리가 들리더니 작은 소년이 팔을 휘저으며 지친 말을 재촉해 집 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톰은 일어서서 길 쪽으로 걸어갔다. 그 소년은 집까지 전속력을 말을 몰고 와 모자를 벗더니 노란 봉투 하나를 땅에 떨어뜨리고는 말머리를 되돌려 다시 내달렸다.

톰은 소년의 뒤에 대고 그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지쳐 버린 듯 몸을 굽혀 바닥에 있는 전보를 집어 들었다. 그는 전보를 손에 들고 햇볕을 받으며 아까 앉아 있던 의자로 가서 앉았다. 그는 마음의 준비를 하려는 듯 언덕과 낡은 집을 한 번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봉투를 뜯었고 되돌릴 수 없는 네 단어와 사람, 사건, 시간을 읽었다.

톰은 천천히 전보를 접고 또 접어 엄지손가락만 하게 만들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 부엌을 거쳐 작은 거실을 지나 자기 침실로 들어갔다. 그는 옷장에서 검은 옷을 꺼내 의자 등에 걸쳐 놓고, 하얀 와이셔츠와 검은 넥타이를 의자에 올려놓았다. 그런 다음 침대에 드러누워 벽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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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알 수 없는 어떤 따뜻한 액체가 그의 몸을 휘감는 듯 뺨이 화끈거리고 양팔에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따뜻한 액체가 금지된 생각들을 넣어 봉해 둔 차가운 상자 속으로 녹아 들어갔다. 그러자 갖가지 생각들이 퇴짜를 맞으면 어쩌나 하고 마음 졸이는 어린애처럼 쭈뼛쭈뼛 수면으로 떠올랐다. 애덤은 젖은 수건을 집어 들고, 몸을 숙여 바짓가락이에 묻은 흙을 닦아 냈다. 안구에 피가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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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에서 톰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는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참나무장작을 한 아름 안고 들어와서 나무상자에 장작을 쏟아 놓았다.

"일어났어? 아직 자고있을지도 몰라서 잠에서 깨라고 휘파람을 불었지. 오늘 아침은 솜털처럼 날아갈 것 같은 날이야. 이런 날 게으름을 피워서야 되겠어?"

그의 얼굴은 행복으로 빛났다.

"꼭 아버지처럼 말하는구나."

데시가 말했다. 그들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렷다.

그는 너무 행복한 나머지 흥분해서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럼, 이제 우리는 이 집에서 예전처럼 살 거야. 그동안 난 등뼈가 부러진 뱀처럼 형편없이 살아왔어. 윌 형이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할 만도 해. 하지만 이제 누나도 돌아왔으니 열심히 살 거야. 이 집에 다시 숨결을 불어넣을 거야. 내 말 듣고 있어? 이 집에 다시 생기가 돌 거야."

"돌아와서 기쁘구나."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는 톰이 얼마나 여리고 좌절하기 쉬운지, 그리고 자기가 그를 어떻게 보호해 주어야 될지를 생각하니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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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를 본 사람은 누구나 두 소년이 서로 많이 다르다는 사실에 어리둥절한 듯했다. 칼은 자라면서 피부가 가무잡잡해지고 머리색도 짙게 변했다. 그는 약삭빠르고 빈틈이 없었지만 어딘가 비밀스러운 면이 있었다. 스스로 그렇지 않게 보이려고 시도도 해 보았지만, 그의 명민함은 감추어질 수 없었다. 어른들은 소년의 그런 성품을 조숙함이라고 여기고 감탄하는 동시에 조금 두려워하기도 했다. 어느 누구도 칼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모두 그를 두려워했고, 두려운 만큼 그를 떠받들었다. 그에게는 진정한 친구는 없었지만 앞에서 아첨하는 몇몇 급우들이 있어서 학교 운동장에서 자연스레 냉혹한 대장 역할을 맡게 되었다.

칼이 자기 재능을 감춘 것이 사실이라면 마음의 상처 또한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뻔뻔스럽고 감수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잔인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반면에 아론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는 수줍음이 많고 섬세해 보였다. 발그레하면서도 뽀얀 피부, 황금빛 머리칼, 미간이 넓은 푸른 눈동자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 끌었다. 유달리 예쁘장한 외모 탓에 처음에는 학교 운동장에서 다소 곤란을 겪기도 햇지만, 그를 한번 건드려 본 아이들은 그가 겁이 없고 끈질기고 굽힐 줄 모르는 싸움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그가 울음을 터뜨릴 때는 누구도 당해낼 수 없었다. 그런 소문이 퍼지자 으레 새로 전학 온 학생들을 곯려 먹던 아이들도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아론은 굳이 자신의 기질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기질과 전혀 동떨어진 외모 탓에 그것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는 일단 방향이 정해지면 절대로 바꾸지 않았다. 말하자면 비교적 단순하고 융통성이 거의 없었다. 그의 정신이 예민하지 않은 만큼 그의 육체 또한 고통에 둔감했다.

칼은 형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평정을 깨뜨림으로써 그를 조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또한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다. 칼은 언제 옆으로 비켜서야 하고 언제 도망쳐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아론은 그와 같은 방향 전환에 다소 혼란스러워했지만, 그 외에는 전혀 동요되는 법이 없었다. 그는 자기 길을 정해 놓고 묵묵히 그 길을 따라갈 뿐, 그 밖의 것에는 한눈을 팔거나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의 감정은 단순하고 무게가 있어서 좀처럼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말하자면 그의 모든 것은 천사 같은 얼굴 뒤에 숨겨져 있었다. 다만 새끼 사슴이 자신의 여린 털가죽에 난 황갈색 얼룩점을 대하듯, 아론 또한 그런 자신의 용모에 대해 걱정도 책임감도 느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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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잘 모르겠구나."

애덤이 말했다.

"너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겠어."

칼은 아버지 목에 양팔을 두른 채 매달리고 싶었다. 아버지를 꼭 끌어안고 싶었고, 아버지가 꼭 끌어안아 주기를 바랐다. 칼은 아버지에 대한 동정과 사랑을 표현하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꼇다. 그는 공연스레 나무로 만든 냅킨 고리를 집어서 그 구멍에 집게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아버지가 물으시면 대답할게요."

그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래, 나는 묻지 않았어. 너에 대해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지. 나는 네 할아버지만큼이나 나쁜 아버지다."

칼은 아버지가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난생처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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