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
빌 브라이슨의 여행기는 정말 이야기를 읽듯이 어깨에 힘을 빼고 읽을 수 있어 좋다. 여타 정보를 중심으로 하는 여행책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 당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정복욕을 자극하지 않고(?) 느긋하게 도시를 둘러보는 듯한 기분을 주어 즐겨 보고 있다.
초반에 오로라를 보기 위해 함메르페스트로 가는 여정부터 너무 공감되어서 (오로라를 직접 보는 것은 내 인생의 꿈이다ㅎ) 완전 집중해서 끝까지 봤음ㅋㅋㅋ
= 코펜하겐
각각 남녀 한 명씩, 코펜하겐의 다른 주민들만큼이나 젊고 잘생긴 금발 경찰관 두 명이 17세가량 되어 보이는 한 소년에게 부드럽고 상냥하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소년은 달나라행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게 만드는, 그런 종류의 마약을 복용한 게 틀림없었다. 갑작스러운 우주여행으로 정신이 멍해진 소년은 비틀비틀 걷다가 넘어져서 머리가 깨졌는지, 이마 윗부분에서 아직 솜털이 보송한 뺨으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경관들은 특수부대 요원같은 첨단 제복을 입고 있었다. 군청색 낙하산 복장 같은 옷이었는데, 지퍼와 접착포로 여닫는 주머니가 여럿 달리고, 회중전등이나 수첩, 휴대 전화 따위를 걸 수 있는 고리도 달려 있었다. 어쩌면 어딘가에 몸을 고정시키는 갈고리나 로켓 발사 장치가 제복에 달려 있는지도 몰랐다. 이들은 라사열(전염벙의 일종) 같은 급성 전염병에서 핵잠수함 무장해제까지 어떤 비상사태라도 자체 처리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지금 보아하니, 이 일이 오늘 저녁 이들이 맡은 임무 중 가장 중대한 사건이었던 듯했다. 덴마크 사람들은 바보스러우리만치 법을 잘 지킨다. 덴마크에서 가장 심각한 범죄라야 자전거 절도다. 우연히 입수하게 된 1982년 자료에 의하면 그해 코펜하겐에서는 살인 사건이 6건뿐이었다고 한다. 유사한 규모의 도시인 암스테르담의 205건, 뉴욕시의 1688건과 크게 대조되는 수치다. 코펜하겐은 치안 상태가 너무도 좋아서 마르그레테 여왕은 아말리엔보르 궁에서 상점가까지 평범한 시민처럼 매일 아침 걸어서 꽃과 야채를 사곤 했다고 한다. 그때 여왕을 경호햇던 한 덴마크 사람에게 정말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놀란 표정으로 답했다.
"우린 모두 그러는데요?"
그 대답은 퍽 신선했다.
경관들은 소년이 일어서도록 부축한 후에 순찰차로 데려갔다. 모여 있던 사람들은 흩어졌지만, 나도 모르게 경관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토록 친절한 경찰을 본 일이 없다는 점을 빼면 내가 그들에게 왜 그렇게 매료됐는지는 모를 일이다. 나는 순찰차까지 가서 영어로 여자 경관에게 물었다.
"실례합니다만, 저 소년을 어떻게 하실 건가요?"
"집으로 데려갈 겁니다."
그녀는 그렇게만 말하고 눈썹을 약간 치켜 올리더니 말했다.
"애들은 자기 침대에서 자야 잘 자잖아요."
나는 큰 감명을 받았다. 미국에서 경찰에게 잡혔을 때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단지 주차 위반 과태료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들은 내게 벽을 향해 팔다리를 벌리고 서도록 한 다음 몸을 수색하더니 나를 경찰서로 연행해 갔다. 당시 내 나이가 열일곱 살 정도였다. 시립 공원 벤치에서 마약에 취해 누워 있었다면 경찰이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했을지 자못 궁금하다. 지금 이 나이쯤 돼서야 출감하지 않았을까?
"저 아이는 이 일로 곤란하게 될까요?"
"아버지한테는 혼 좀 나겠지요. 그러나 우리하고는 아무 일 없을 겁니다. 우리는 모두 젊고, 때로는 제정신이 아니잖아요. 안녕히 가세요. 코펜하겐에서 좋은 시간 보내시고요."
"안녕히 가세요."
이렇게 답한 후, 나는 탄복하면서 그들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 오스트리아
유럽에 대해 내게 지금도 생생한 인상을 남긴 어릴 때 본 월트 디즈니 영화가 생각났다. 제목이 <트러블 위드 앤젤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매우 감상적이고 촌스러운 픽션으로, 천사의 목소리와 앵둣빛 뺨을 한 장난꾸러기 소년들이 비엔나 소년 합창단에 입성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나는 몹시 감상적이고 촌스러웠기에 이 영화를 아주 재미있게 봣는데, 특히 내게 각인된 것은 유럽다운 배경이었다. 자갈이 깔린 길이라든지 조그만 자동차들, 문 위쪽에 작은 종이 달린 상점들, 소박하고 정겨운 소년들의 집이 유럽다웠다. 이 모두는 내가 알던 세련되고 현대적인 세상에 비해 지극히 매력적이고 기분 좋은 옛날 분위기였다. 그래서 이 영화는 오스트리아가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유럽다운 것 같은 확고한 인상을 내게 심어주었다. 그 중에서도 이곳 인스부르크가 그래 보였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 특히 이번 여행에서는 단연 처음으로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찼다. 나는 유럽에 있었다. 그건 묘하게 심오한 느낌이었다.
= 소피아
불가리아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내가 불가리아에 갔다 온 2주 후, 국민들은 광기에라도 휩싸인 듯이 자유의지로 공산당 정권에 찬성표를 던져, 구래의 정체를 자발적으로 유지하는 최초의 동유럽 국가가 되었다.
이는 유럽에서 공산주의가 종언을 고한 1990년의 일이다. 그러나 철의 장막이 무너진 데 대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논평했는데도, 그것이 고귀한 실험의 끝이었다고 애석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게 이상하게 여겨졌다. 공산주의는 성공하지 못했고, 나도 공산주의 체제에서 사는 건 싫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공적인 것으로 보이는 유일한 경제 체제가 이기주의와 탐욕을 바탕으로 한 체제라고 생각하면 어쩐지 서글프기만 하다.
불가리아에서 공산주의는 지속되지 않을 것이며, 지속될 수도 없다. 국민을 배곯게 하며 아이들에게 장난감조차 주지 못하는 정부를 계속 유지할 국민은 없다. 5년 후에 다시 소피아에 가본다면 피자헛과 로라 애슐리가 즐비하고 거리에는 BMW가 넘쳐나며,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행복하리라고 나는 장담할 수 있다. 그래도 나는 그들을 추호도 비난할 수 없겠지만 그렇게 변하기 전에 그곳에 다녀왔다는 게 너무도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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