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책 2
왠지 1권이 더 재밌었던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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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과 서양이 상대보다 우위에 있던 각 시기는 우연이 아니라 논리적인 결과였다. '그 역사적 시기에' 승기를 잡은 쪽은 세계를 비밀과 이중적 의미로 가득 찬 신비스러운 장소로 보는 쪽이었다. 세계를 단순하고 단일한 의미로, 신비스럽지 않은 곳으로 보는 사람들은 패배했고 노예가 되는 길을 피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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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는 것이 다른 사람의 기억을 서서히 취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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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숨기는 것은 관심을 끌 뿐 아니라, 죽음마저 초대하는 거야. 자신이 저격당할 만큼 중요한 사람이라고 믿게끔 만들기 위해서지. 민주당 시기에 사람 좋고 얌전하며 겁쟁이인 작가가 있었어.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그는 관심을 끌기 위해 매일 가명으로 언론 검찰에 자신을 고발하는 편지를 썼어. 자신에 대한 재판이 열리면 관심을 끌 것 같아서 말이야.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던지 그 고발장을 우리가 썼다고 주장하기도 했어. 알아듣겠나? 제랄 씨도 나라와의 유일한 끈인 과거를 기억과 함께 이제 잊고 말았지. 그가 새 글을 쓰지 않는 것도 우연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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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동안 '신비'라며 우리가 쫓아다니게 만들었던 사실이 이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소. 당신도 모르면서 알았던 것처럼, 이해하지 못하면서 썼던 것처럼, 그 누구도 이 나라에서 자기 자신이 될 수 없소! 패배자와 억압받은 자의 나라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오. 나는 다른 사람이다, 고로 존재한다! 그런데 내가 되고 싶어 안간힘을 썼던 그 다른 사람도 다른 사람이라면? 내가 배반당하고, 속았다고 말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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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쓰기 방식은, 누가 들을지 생각하기보다는 큰 소리로 생각하는 것, 내 기분을 따르는 것이다.
- 드퀸시, 어느 아편 중독자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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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조차 고통으로 주춤거리는 듯한 그 집이 가져다주는 기억을 견딜 수 없어서 갈립은 뤼야와 함께 살았던 셋집을 떠나 쉐흐리칼프 아파트에 있는 제랄의 집으로 옮겼다. 뤼야의 시신을 전혀 보지 않았듯이, 아버지와 여기저기 나누어 주거나 팔아치운 물건도 전혀 보고 싶지 않았다. 뤼야의 첫 번쨰 결혼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뤼야가 어느 날 어느 곳에선가 다시 돌아와, 읽다 만 책을 계속 읽는 것처럼, 삶을 계속 살아 갈 거라는 환상도 꿈꾸지 않았다. 여름날은 덥고 도무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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