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와의 접촉, 그리고 그것이 방문자들에 걸맞는 형태로 변형된다는 면에서 일견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 연대기 중 한 단편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뒤로 갈수록 내용은 전혀 달라진다. 방문자(지구인)들이 외계에서 탄생한 피조물에 영향을 받지만 피조물 자체에는 악의도 선의도 없다는 점이나, 피조물 자체가 자신이 창조된 이유를 모르고 있다는 점이라던가, 그런 점들이.
부드럽고 유연하게 읽히면서도, 논의의 깊이는 가볍지 않아서 확실히 하드SF에 가깝다. 하지만 정말 재밌게 잘 읽었다. 렘의 다른 작품들도 기대기대.
오멜라스 판본으로도 읽고 싶다. 중고 찾아보고 있는데 가격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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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한시라도 당신에게서 눈을 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그녀의 말투는 애정의 고백과는 거리가 먼, 뭔가 전혀 다른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녀를 포옹하고 있던 나의 내부에서 작은, 그러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레야를 껴안고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천천히 레야의 양손을 그녀의 등 뒤로 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시작했던 그 동작은 점점 의식적인 것이 되어 갔고, 곧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계속되었다. 나는 뭔가 그녀를 묶을 만한 것을 것을 찾아 방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뒤로 꺾인 그녀의 양 팔꿈치가 서로 맞닿는 동시에 그녀는 무서운 힘으로 내 손을 뿌리쳤다. 내가 버틸 수 있던 것은 한 순간에 불과했다. 아무리 힘센 남자라고 해도 등 뒤로 손이 묶이고 손끝이 거의 땅에 닿을 정도로 젖혀진 자세에서 나를 뿌리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레야는 몸을 곧추세우고 양팔을 옆구리로 가져갔다. 그녀는 아까의 격투와 자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듯이 시종일관 애매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막 잠에서 깨어났을 때 본 것과 똑같은 조용한 흥미를 보이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갑작스런 공황에 빠져 발작적으로 저지른 일 따위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그녀는 뭔가를 기다리는 듯한 태도로 내 앞에 서 있었다. 심각하고, 무관심하며 약간은 놀란 듯한 그 표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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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야는 양 팔꿈치를 내 무릎 위에 얹고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손을 들어 그녀의 팔과 어깨를 만져 보았다. 그녀의 목덜미를 만지는 내 손가락 아래에서 맥박이 뛰는 것을 느꼈다. 마치 내가 그녀를 애무하고 있는 듯한 광경이었지만ㅡ그녀가 그것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은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ㅡ사실 나는 그녀의 몸이 따뜻한지, 그 밑에 정말로 근육과 뼈, 그리고 관절이 있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조용히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는 사이 나는 돌연히 그녀의 목을 조르고 싶다는 끔찍한 충동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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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인 인간이란, 도대체 정상적인 인간이란 어떤 것이지? 단 한 번이라도 비열한 행위를 저지른 적이 없는 인간을 뜻하는 건가? 아마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설령 그것을 실행에 옮긴 적이 없더라도, 비열한 일을 상상한 적조차 없는 인간이 존재할까? 그것 또한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지. 그러나 10년이나 30년 전에 겪었던 정신적 갈등의 망령이 되살아난다면? 그런 갈등을 억압하고 망각하는 일은 어렵지 않지. 설사 그런 생각을 했다 하더라도 자기가 절대로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는 사실을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으니까 말야. 그런데 이 과거의 망상이 살과 피를 가진 사람의 모습을 하고 벌건 대낮에 느닷없이 나타난다면? 자기에게 달라붙어 절대로 떨어지지도 않고 죽일 수도 없는 것이라면? 그럴 경우 자네라면 어떻게 하겠나? 도대체 어디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나?"
"어디서지?"
"바로 여기야, 솔라리스에서."
스노우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그렇지만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자네나 사토리우스가 범죄자일 리도 없는데..."
"켈빈! 그러고도 자네는 심리학자인가? 도대체 인생의 한 순간에 그런 백일몽을 꾸거나 강박관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극단적인 예를 들어, 여기 더러운 속옷 조각에 비정상적인 애착을 가진 페티시스트가 있다고 가정해 보게. 그 '소중한' 넝마 조각을 얻기 위해서라면 탄원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심지어는 협박조차도 불사하는 인간이야. 생각해 보면 기묘한 얘기 아닌가? 자기 자신이 그런 물체를 열애한다는 사실에 수치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미칠 정도로 그것을 원하고,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내던지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 말야.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정열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할 수 있지. 그런 사례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자네도 알잖나. 인간이란 그 누구도 절대로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일 내지는 상황을 적건 많건 간에 마음 속에서 그리고 있는 거야. 그 생각이 순간적인 착란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광기의 산물인지는 문제가 되지 않아. 머릿속에만 있던 그것이 어느 순간 피와 살이 되어 현실로 나타나지. 문제는 그게 전부야."
"그게 전부라고? 그럼 이 스테이션은? 그게 이 스테이션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나는 멍하게 그의 말을 되풀이했다. 머리가 완전히 혼란해 있었다.
스노우는 신음하듯이 말을 내뱉었다.
"마치 일부러 모르는 체 하는 것 같군. 내가 지금까지 설명한 건 전부 솔라리스에 관해서야. 솔라리스뿐이란 말야. 자네가 진실을 거부하더라도 그건 내 책임이 아냐. 그러나 자네가 겪은 일들을 고려해 본다면 적어도 끝까지 내 말을 들어 줄 수는 있겠지! 우리는 우주로 나오기 위해 모든 종류의 훈련을 쌓았고, 또 모든 돌발 사태에 대비해서 가능한 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네. 우리는 고독도, 투쟁도, 고난도, 그리고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았어. 우리들은 겸손하기 때문에 실제로 입 밖에 내는 일은 없지만, 속으로는 우리 모두가 상당히 우수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그건 모두 협잡이고 거짓말이라는 걸 알 수 있어. 우리는 우주를 정복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단지 지구를 우주 규모로 확대하고 싶어할 뿐이야. 행성 중에는 사하라 사막 같은 불모의 행성도 있고, 북극처럼 얼어붙은 곳도, 또 아마존 강 유역처럼 정글로 뒤덮인 곳도 있다는 식이지. 우리는 휴머니스트인 동시에 고귀한 품성의 소유자란 말씀이야.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행성에 사는 종족을 정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들에게 지구의 문화를 전파하고, 그것과 교환으로 그들의 유산을 이어받기를 원하는 거지. 우리는 우리가 신성한 '접촉'의 기사라고 여기고 있네. 이건 두 번째 거짓말이야. 우리가 원하는 건 인간 이외의 그 어느 것도 아냐. 지구 이외의 다른 세계 같은 건 필요 없어. 다만 우리를 비출 거울이 필요한 것뿐이야. 다른 세계 같은 건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어. 우리에겐 지구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렇지만 그 지구만으로는 뭔가 불충분한 것 같이 느끼지. 그래서 우주에서 이상향을 찾아 보려고 하는 거야. 우리는 지구 문명보다 더 완전하고 우수한 문명을 가진 세계를 찾아 우주로 나가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미개했던 과거의 연장선상에 있는 존재를 찾아 헤매고 있는 거야. 사실이 어쨌든 간에 우리 마음 속에는 우리가 직접 마주 대하는 걸 기피하고, 우리를 방어적으로 만드는 그 무언가가 언제나 존재하고 있어. 순진 무구한 상태에서 지구를 떠나는 것이 아닌 이상 그건 언제나 우리를 따라오지. 그래서 우리는 현실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곳에 도착하게 되고 곧 진실, 우리가 가능한 한 언급하기를 꺼리는 진실과 맞부닥치는 거야. 이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이지."
나는 참을성 있게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럼 그것의 정체는 뭐지?"
"바로 우리가 그렇게도 원하던 것, 즉 다른 문명과의 접촉이란 말야. 드디어 접촉은 실현됐어! 우리 자신의 추악함이 마치 현미경으로 보듯 몇백 배나 확대된 것과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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