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ㅅ- 'ㅅ'

그레이스 1

책/읽고나서2012. 5. 1. 09:53



그레이스. 1

저자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2-03-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사람들은 죄인을 원해요. 사건이 벌어지면 누구소행인지 알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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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애트우드가 어떤 여성 주인공을 선호하는지 알 것 같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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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고 있었고, 진창에 서 있던 엄청난 인파 중에는 멀리서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다. 나에게 내려진 사형선고가 마지막 순간에 감형되지 않았다면, 그들은 내가 처형당하는 광경을 보며 똑같이 게걸스러운 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여자와 귀부인 들도 많았다. 모두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싶어 했고 모두들 멋진 공연이라도 되는 것처럼 죽음을 들이마시고 싶어 했는데, 나는 그 기사를 읽었을 때 만약 이게 교훈이라면 어떤 걸 배워야 하는 교훈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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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와의 첫 만남을 준비했을 때만 해도 사이먼은 이 그림을 전혀 믿지 않았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느긋하지 않고 좀 더 애원하는 분위기겠지. 어쩌면 미쳤을 수도 있고. 그레이스가 있는 임시 독방으로 안내한 교도관은 그녀가 보기보다 힘이 세서 사람을 심하게 물어뜯을 수도 있으니 사나워지거든 도움을 청하라고 경고한 다음 그를 안으로 들이고 문을 잠갔다.

하지만 그녀를 본 순간, 그럴 일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저 위쪽의 조그만 창문을 통해 비스듬히 들어온 아침 햇살이 그녀가 서 있는 한쪽 구석을 비추었다. 수수한 윤곽과 선명하게 각이 진 품새가 중세에 가까운 이미지였다. 수녀원의 수녀, 아니면 뾰족탑에 갇혀 내일 거행될 화형식 또는 마지막 순간에 나타나 그녀를 구해 줄 전사를 기다리는 처녀, 궁지에 몰린 여자. 아무것도 신지 않았을 게 분명한 맨발을 감추고 있는, 일직선으로 떨어지는 참회의 드레스. 짚을 넣어 만든 바닥 위 매트리스. 겁을 먹고 움츠린 어깨. 야윈 몸을 꼭 끌어안은 두 팔. 언뜻 보이는, 하얀색 화관 같은 캡에서 삐져나온 한 움큼의 기다린 적갈색 머리카락.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포 내지는 무언의 간청으로 휘둥그레진, 창백한 얼굴 위의 커다란 눈. 이 모든 게 전형적이었다. 그는 파리의 살페트리에르 병원에서 이와 흡사한 분위기의 히스테리 환자를 수도 없이 만났다.

그는 침착하게 웃는 얼굴로 호의적인 인상을 풍기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사실 호의를 품고 있었으니 거짓으로 꾸민 인상은 아니었다. 이런 환자들은 스스로 미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적어도 그만큼은 그들을 정신병자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심어 주어야 했다.

그런데 그때 그레이스가 햇빛이 비치지 않는 곳으로 걸어 나오자 조금 전까지 보였던 여자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그 대신 자세가 좀 더 꼿꼿하고, 키가 더 크고, 좀 더 침착하며, 파란색과 하얀색 줄무늬의 전형적인 죄수복에 맨발이 아니라 평범한 신발을 신고 있는 여자가 등장했다. 심지어 밖으로 삐져나온 머리카락도 생각보다 적었다. 대부분의 머리카락이 하얀 캡 속에 얌전히 들어가 있었다.

눈이 남들보다 큰 건 사실이었지만, 정신이 이상한 기미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 쪽에서 오히려 대놓고 그를 평가하고 있었다. 마치 미공개 실험의 대상을 관찰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감시하에 놓인 사람이 그녀가 아니라 그인 듯한 눈빛이었다.

사이먼은 그 장면을 떠올리며 움찔한다. 내가 상상과 공상에 너무 푹 젖어 있었군. 관찰하는 데 집중하고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해. 정당한 근거가 있는 실험은 반드시 입증할 수 없는 결과를 낳기 마련이지. 신파와 지나친 흥분은 자제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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