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ㅅ- 'ㅅ'

발리스

책/읽고나서2012. 4. 28. 01:17



발리스(VALIS)

저자
필립 K. 딕 지음
출판사
폴라북스 | 2012-01-27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필립 K. 딕 걸작선 발리스 VALIS 진정한 시간은 C.E. ...
가격비교


필립딕 전집 후반으로 갈수록 국내 초역본도 많고 그만큼 난해한 느낌; 저번 책보다 이번 책이 훨씬 더 난해했음...


=


정신이 멀쩡한 것과 멀쩡하지 않은 것의 차이는 사실 면도날의 두께보다도 더 얇으며, 사냥개의 이빨보다 더 날카롭고, 노루보다도 더 재빠르다. 이는 가장 희미한 유령보다도 더 파악하기가 힘들다. 어쩌면 이런 차이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 '자체'가 유령일지도 모른다.


=


각각의 사례마다 환자는 삶의 어느 순간에 어느 장소에서 일종의 총알을 한 방 맞았다. 그 총알이 몸에 박혀 고통이 퍼져 나가기 시작한다. 이 음흉한 고통은 그를 가득 채우다 못해 마침내 그를 한가운데에서 절반씩 쪼개버린다. 그렇게 쪼개버린다. 그렇게 쪼개진 사람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것이 이 병원의 직원들, 그리고 심지어 다른 환자들의 임무였지만, 그 총알이 여전히 몸에 남은 한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실력이 더 떨어지는 치료요법사의 경우, 일단 환자가 반반으로 쪼개진 것을 깨닫고, 그를 하나로 돌려놓기 위해 깁는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은 총알을 발견하고 제거하는 데에는 실패한다. 환자가 맞은 치명적인 총알이야말로, 심리적으로 부상을 입은 사람을 향한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기초가 된다. 프로이트는 이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그걸 트라우마라고 불렀다. 나중에는 모두들 치명적인 총알을 찾는 데에 진력을 뺐다. 너무나도 오래 걸렸기 떄문이다. 환자에 관해 너무나도 많은 것을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톤 박사는 초자연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배치 치료법과 마찬가지로 그 재능은 초자연적이라 불릴 만했다. 물론 그 요법은 누가 봐도 허위였으며, 단지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 그건 단지 꽃을 담갔다 꺼낸 럼주에 불과했다. 다만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예리한 정신은 그 과정에서 환자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


하느님은 선한 동시에ㅡ선한 '다음에'가 아니라ㅡ 무서울 수 있다. 우리와 그의 사이에 있을 중재자를 우리가 물색하는 것도 이래서다. 우리는 중재하는 사제를 통해서 그에게 접근하고, 성례전을 통해서 그를 감쇠시키고 속박시킨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다. 그를 안전하게 만들어줄 울타리를 이용하여 그를 가두어놓는 것이다. 하지만 팻이 이미 살펴본 것처럼 하느님은 그 울타리에서 도망쳤고 세계를 성변화시켰다. 하느님은 자유로워진 것이다.

"아멘, 아멘" 하는 성가대의 부드러운 노랫소리는 회중을 진정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을 달래기 위한 것이다.

당신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당신은 종교의 가장 내밀한 핵심 속으로 침투한 셈이 된다. 최악의 부분은 신이 돌출해 나와서 회중에 들어가 결국 그들이 되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 신에게 예배를 드리지만, 그 신은 당신을 사로잡아버리는 것으로 되갚는다. 그리스어로는 '엔토우시아스모스'라고 하는데 직역하자면 '신에 사로잡히다'라는 뜻이다. 그리스의 모든 신들 중에서도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신은 바로 디오니소스였다. 그리고 불운하게도 디오니소스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ㅡ거꾸로 말하자면ㅡ 당신의 신이 당신을 사로잡아버린다고 한다면, 그 신의 이름이 무엇이건 간에 그 신은 사실상 미치광이 신 디오니소스의 한 형태일 것이다. 그는 또한 도취intoxication의 신인데, 이 단어를 직역하면 독소toxins를 마신다는 뜻이 된다. 즉 독약을 마신다는 뜻이다. 바로 거기에 핵심이 있다.

이 사실을 감지한 사람은 도망치려 시도할 것이다. 하지만 도망치더라도 어쨌거나 그에게 사로잡힐 것이다. 본래 억누를 수 없을 정도로 도망치고 싶은 충동을 가리키는 공포panic라는 단어는 반신 판Pan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판은 디오니소스의 하위 형태다. 따라서 디오니소스로부터 도망치려는 과정에서 당신은 결국 그에게 사로잡히고 만다.


=


내가 이미 말한 것처럼, 어떤 방향을 택하건 간에 뛰어 달아나면 신도 함께 뛰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그는 어디에나 있으니까. 내부에도 외부에도.


=


PKD가 사망 직전에 발표한 장편 <발리스>(1981), 성스러운 침입(1981), 그리고 사후에 간행된 유작 <티모시 아처의 환생>(1982)를 이른바 '발리스 3부작'이라고 부른다. 비록 발리스와 성스러운 침입에서 '발리스'라는 존재가 언급되기는 하지만, 이 세 권의 작품은 등장인물이나 줄거리의 연속성은 없는 독립적인 작품이며, 마지막 작품인 티모시 아처의 환생은 심지어 SF도 아닌 일반 소설이다. 다만 그 내용이 아니라 주제의 유사성에서 이 세 작품을 '3부작'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중략)

발리스는 상당히 난해한 작품이다. 비록 줄거리를 요약해 놓았지만. 막상 책을 읽고 나서도 여전히 모호한 느낌이 남는다. 가령 발리스는 정확히 무엇인가? 램턴 부부와 소피아의 정체는 정확히 무엇인가? 독자라면 누구나 느낄 법한 이런 의문에 대해서 PKD는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는다. 발리스가 PKD의 열성 팬들에게는 그의 최고 걸작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지만, 정작 흥미진진한 SF를 기대했던 일반 독자들에게는 난해하고 지루한 작품으로 평가되는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심지어 이 책을 출간한 밴텀 북스조차도 처음에는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나머지 출간을 미루었고, 계약 기간이 끝날 즈음에야 어쩔 수 없이 간행했다. PKD와 절친했던 어슐러 르 귄도 이렇게 말했다. "그의 발리스를 위시한 말기의 작품들을 좋아할 수가 없다. 그 책들에는 그가 결국 빠져나오지 못한 광기가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거기서 빠져나왔지만, 필의 경우에는 항상 거기서 빠져나온 것까지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이 항상 문학으로 승화되는 것도 아니었다."


=

' > 읽고나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들  (0) 2012.04.28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  (0) 2012.04.28
눈 먼 암살자 1,2  (0) 2012.04.28
검은 책 2  (0) 2012.04.28
SF 명예의 전당 1  (0) 2012.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