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북디자인이나 타이포그래피 쪽은 남몰래 가지고 있는 꿈이다보니 관련 책이 있으면 덥석덥석 집어들어 읽게 된다. 북디자인 중에서도 펭귄 디자인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이 책도 제목을 보자마자 읽어보고 싶은 버킷 리스트에 넣었다. 예전에 땡스북스에 갔다가 지난번에 읽었던 '좌충우돌 펭귄의 북 디자인 이야기' 옆에 꽂혀 있어 꼭 읽어봐야지 했던 책인데 지금에서야 빌려서 읽게 됐다. '좌충우돌 펭귄의 북 디자인 이야기'가 주로 표지에 따라 디자이너와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일화를 다루고 있다면, '펭귄 북 디자인'이라는 이 책은 말하자면 펭귄이라는 브랜드의 역사를 다루는 쪽에 가깝다. 삽화는 전자가 많았지만, 내용은 후자가 보다 재밌었다. 출판사의 역사를 다룬 책에 가까워서 그런가, 예전에 읽었던 '내맘대로 랜덤하우스'를 연상케했다.
펭귄의 문고판 디자인이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지부터 시작해서, 퍼핀이나 펠리컨 같은 펭귄의 임프린트들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재미난 점은 펭귄의 디자인이 인쇄 기술의 발전, 문고판의 발달에 따라 함께 변화했다는 점이기도 하다. 펭귄을 거쳐간 기라성같은 디자이너들과, 그들이 어떤 관점에서 기존 펭귄 디자인의 정체성을 흐리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시류에 맞춘 디자인을 선보일 수 있을지 고민한 점들이 잘 기술되어 있다. 얀 치홀트가 비록 긴 기간은 아니었으나 펭귄에 있었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되었는데 놀랍다. 그리고 이 시기, 아주 미묘하게 변화했지만 그 결과를 보면 확연하게 드러나는 완성도 높은 디자인이 확실히 거장의 손길을 느끼게 한다. 단순한 타이포그래피나 로고로서 디자인의 통일성을 주는 것이 아니라, 로멕 마버가 디자인한 마버 그리드라는 표지 디자인 뒤에 숨겨진 비율로서 펭귄에서 출판되는 수많은 책들의 표지의 일관성을 만들어냈다는 점도 흥미롭다.
변하는 시대에 맞춰 펭귄의 디자인은 계속해서 변화를 거듭해왔다. 종이책의 위기라고 흔히 말하는 현재, 펭귄은 또 어떤 디자인으로 이 시대에 발맞춰 나갈런지 기대된다. 작년 영국의 워터스톤에서 너무 멋져서 계속 이리보고 저리보고 했던 펭귄의 양장본 문학 전집이나(국내에서 펭귄클래식을 발간중인 웅진 역시 몇 권은 이 디자인을 가져와서 양장본으로 발간했다, 그런데 국내의 펭귄책은 본문 디자인이 좀 아쉽다), 이번에 하와이에 여행갔을 때 반스앤노블에서 눈길을 끌었던 어린이용 양장본 세계문학 역시 펭귄의 임프린트인 퍼핀의 책이었다. 종이책은 과연 단지 책을 읽기보다는 소유하길 원하는 사람들의 전유물로 남을 것인가? 그래서 그 자체로 아름다운 예술품이라 할 수 있는 양장본의 발간에 힘을 쏟는 것일런지도 모르지만, 많은 이들에게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보다 풍요로운 읽을 거리를 제공하고자 문고판 시장에 뛰어들었던 펭귄의 정신이 여전히 그리운 사람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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