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ㅅ- 'ㅅ'



미덕의 불운

저자
싸드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2011-01-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보라, 그대의 이 대견스러운 작품의 꼴을!] 도덕과 종교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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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 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어도 진짜 싸드 글을 읽어본 건 처음이다. 성적인 걸 떠나서 진짜 냉소적이네; 꿈도 희망도 없어... 쥘리에뜨와 쥐스띤느 자매의 이야기가 싸드 저작 중 많은 것들의 원형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 또 나온 거 있나. 사실 싸드 이름을 처음 들은 건 <소돔의 120일>인데 읽고 나서 후폭풍이 장난 아니라고 해서 좀 읽는 게 저어되기도 한다. 게다가 너무 원류적인 S라서 읽기도 쉽지 않다고. (구하기 어렵기도 하거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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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것이 짐승이라 생각했는데, 차츰 두 남자의 목소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 내 친구여, 어서! 여기라면 기가 막히게 좋을 거야."

두 사람 중 하나가 말하였습니다. "내 어머니가 살아계시다는 잔혹하고 숙명적인 처지라 하더라도, 내게 그토록 귀한 쾌락을 그대와 잠깐 나누는 것을 막지는 못할 거야..."

그들은 제가 숨어있는 곳으로 다가와 바로 저의 면전에 자리를 잡는지라, 그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포착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눈앞에 장면이 펼쳐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오! 하늘이여! ㅡ이야기를 잠깐 중단하며 쏘피가 소리쳤다ㅡ 장면을 일일이 묘사하기는커녕 차마 귀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그토록 아슬아슬한 장면만을 골라서 그 속에 저를 던져 넣다니, 그것이 운명이라 하더라도 그럴 수가 있습니까? ...자연과 율법을 모독하는 그 죄악, 하느님의 손이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주멸하신 그 끔찍한 범죄, 한마디로, 저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던 그 추태가, 모든 불결한 기교와 가장 용의주도하게 준비된 타락의 장면을 연출하며 저의 목전에서 펼쳐졌습니다.

그들 중 위에 있던 남자는 스물넷쯤 되어 보였는데, 초록색 옷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것으로 보아 지체 높은 집안의 젊은이임에 틀림없었습니다. 밑에 있던 다른 남자는 그 젊은이의 하인 같았고, 열일고여덟쯤 되어 보였는데 용모가 아주 귀여웠습니다. 제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은 음란한 것에 못지 않게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그 시간이 그만큼 저에게는 견딜 수 없는 순간이었지만, 발각될까 두려워 꼼짝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윽고 범죄적 장면을 연출하던 주인공들이, 만족하였던지 몸을 일으켜 집으로 돌아가려는 눈치였습니다. 그때 주인처럼 보이는 남자가 일을 보려고 제가 숨어 있는 덤불숲으로 다가왔습니다. 저의 쫑긋 올라간 모자가 사단이 되어 그가 저를 발견하고야 말았습니다.

"쟈스맹, 내 사랑, 발각되었어... 어떤 계집아이가, 불경한 여자가, 우리들의 의식을 훔쳐보았어. 어서 이리 좀 와요, 깜찍한 계집아이를 끄집어내서 어떻게 하나 보아야겠어." 그가 자기의 젊은 아도니스에게 소리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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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드의 내밀한 본능 혹은 충동은, <깡그리 썩은 세상>이라는 참담한 인식에서 필연적으로 분출될 수 있는 일종의 반작용이나 생리적 혹은 물리적 반응과 유사하다. 그가 일체의 윤리적 혹은 관습적 금기를 무시하고 거침없이 묘사하는 온갖 음행 및 잔혹 행위는, 종교라는 탈을 쓴 미신의 파렴치한 궤변과, 종교 집단의 <경비견>으로 전락한 세속적 권력(왕권), 그리고 그 전염병에 감염되어 멍청한 위선자들로 변해버린 대중에게 던진 추상같은 경고이며 싸늘한 야유이다.

(중략)

물론 싸드의 작품들 속에도 해학은 있다. 하지만 그의 해학은 은은하고 음산한 농담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일종의 애도가 혹은 절규 같은 것이 주위를 감돌고 있다. 또한 몽떼스끼유나 볼떼르 등의 해학이 대개 변죽을 울리는 암시의 형태를 띠어 날렵하고 우아한 반면, 싸드의 농담에서는 단두구의 시퍼런 작두날이 느껴진다. 그 처절하고 잔혹한 언사 또한, 다른 동시대 문인의 언사처럼, 그의 시대가 배태시킨 필연적 산물이다. 페르시아의 침공과 펠로폰네소스 전쟁 및 스파르타의 괴뢰 정권을 겪은 아테네의 저질 민주 체제 시절, 질투심 가득한 선동꾼들의 종교 재판에서 소크라테스가 죽임을 당한 이후, 플라톤과는 다른 안티스테네스, 디오게네스, 크라테스 등 스스로 개를 자처하던 철인들이 출현하였듯이, 종교 집단과 왕권이 추하게 결탁하던 시절에 몽떼스끼유나 볼떼르 등과는 기질이 다른 싸드와 같은 몽상꾼이 나타난 것 역시 필연적 현상이며 역사의 반복이다. 그 고분고분하지 못한 시대의 <사생아>가 따라서 사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 정중한 대접을 받지 못하였고, 그의 많은 작품들이 압수되어 소각된 것 역시, 고대 그리스 학자들의 숱한 저작물들이 어느 순간 이 지상에서 자취를 감춘 것과 같은 현상이다. 싸드 역시 아낙사고라스나 데모크리토스, 에피쿠로스 등의 운명을 자초한 것이다. 그의 작품 속에서 배태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미덕의 불운>이 처음 출간된 것이 그의 사후 한 세기 이상 지난 다음이고(1930년), 그의 작품들이 프랑스에서 고전의 반열에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이 1990년에 이르러서이니(그해에 갈리마르 출판사 <쁠레이아드 총서>에 포함되었다), 관습과 편견과 위선의 횡포가 얼마나 끈질긴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물론 그러한 횡포가 지속적으로 위력을 발휘하였다는 사실은, 우리들 자신이 시류의 부유물처럼 허약하고 비겁하다는 점을 반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의 천성이 하도 고아하여 싸드와 같은 이의 노골성과 격렬함(포악성이라 해도 좋다)만은 차마 수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하튼 <미덕의 불운>이라는 작품이 단초가 되어 펼쳐지는 싸드의 몽상 세계에서 발견되는 노골성은, 중세의 패설들을 점철하고 있는 노골성 및 디오게네스나 크라테스 등의 그리스적 노골성을 압도하고, 그 격렬함은 <여우 이야기>의 몇몇 일화나 라블레, 메리메, 등의 작품 세계에서 발견되는 것보다도 더 처절하다. 프랑스 천년 문예사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 풍자 내지 항변이지만, 그 유구하고 거센 흐름에서도 특히 싸드의 작품들이 외롭게 우뚝 솟아 기괴한 형상을 드러내고 있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중략)

요컨대, 싸드의 작품 세계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따라서 극도로 외로운 이의 몽상에서 분출된 용암 혹은 분비물일지 모르겠다. 디오게네스가 어떤 사람이냐고 누가 묻자, 플라톤은 그가 <미쳐 버린 소크라테스>라고 대꾸하였다고 한다. 자신을 끊임없이 야유하며 심지어 소피스트라고까지 부르던 디오게네스를 그렇게 평한 플라톤의 말 속에는, 디오게네스에 대한 그의 깊은 이해와 애정과 존경이 서려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싸드를 그러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듯도 하다. 품은 뜻은 고결하되, 검도 무리도 시운도 얻지 못한 기사나 외로운 군주, 그리하여 몽상이 오히려 잔혹하고 변덕스러우며 섬세하고 역설적일 수밖에 없게 된, 네로나 칼리굴라처럼 중병에 걸린, 다시 말해 미쳐 버린 근본주의적 혹은 급진적 치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을 듯하다. 또한 싸드의 작품을 읽으면서 <여우 이야기>를 쓴 중세 어느 문인의 다음 말을 뇌리에 떠올리는 것도, 우리의 경직된 시선을 완화시키는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학교에서 얻어들은 바에 의하면, 지혜로운 말은 미친 자의 입에서 나온다 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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